대구 청라언덕, 담쟁이 벽 사이로 걷는 시간의 골목

대구 청라언덕

 

대구 청라언덕은 선교사 주택과 계산성당, 독립운동 조형물까지 역사와 감성이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사계절이 아름답고, 혼자만의 사색에도 잘 어울리는 이 언덕길은 조용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지금 이 길에서 나만의 시간을 걸어보세요.

오래된 이야기 위를 걷다

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단어 안에서 이상하게도 푸르른 그림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실제로 도착한 순간, 그 이미지가 생각보다 훨씬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대구 중심에 자리 잡은 이곳은 번화가와는 분명히 가까운데도 묘하게 고요하고 따뜻한 기운이 있었다.

‘대구 청라언덕’은 그 이름처럼 담쟁이가 푸르게 덮인 선교사 주택들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작은 언덕길이다. 이 길은 단순한 거리나 산책로가 아니라, 대구의 근대화를 품은 장소이기도 하다. 한때 서양 선교사들이 의료와 교육, 종교를 전하기 위해 이 지역에 정착했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블레어 주택, 스윗즈 주택, 제일교회, 계산성당까지. 모두 이 언덕의 품 안에서 고요히 과거를 증언하고 있다.

특히 계산성당은 최근 드라마 <폭싹 속았어요>의 결혼식 장면 촬영지로 알려지며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함보다도, 천천히 오르며 한 시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에서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내가 걸었던 시간

나는 몇 년 전 가을, 중구 근대화 골목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이곳을 찾았다. 처음엔 단순히 뉴진스 ‘Ditto’ 뮤직비디오 촬영지라는 정보만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청라언덕이 주는 감정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햇살이 가득한 날, 담쟁이가 흐드러진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눈에 띄는 건 건물이나 풍경보다도 곳곳에 깃든 이야기들이었다. 골목을 돌다가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을 마주했을 때는, 그저 ‘예쁜 장소’라고만 느꼈던 이 언덕이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로 다가왔다.

그날은 공사가 한창이어서 다 돌아보진 못했지만, 선교사 묘지 근처를 지나며 잠깐 멈춰 서 있었다. 그저 외국인이 아닌, 이 지역에 삶을 바치고 뿌리내렸던 사람들의 흔적.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대구 도심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이곳만은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 언덕에서 마음 한 조각을 맡기고 있었다.

계절을 품은 골목, 발걸음을 붙잡다

‘대구 청라언덕’은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옷을 갈아입으며 방문객을 맞이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봄이 오면 언덕을 따라 핀 목련이 하얗게 피어나 담벼락을 부드럽게 감싸고, 길가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밉니다. 산책을 하다 보면,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머리 위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고, 그 잔잔한 움직임이 따스한 계절의 시작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여름엔 짙은 초록이 언덕을 가득 메웁니다. 특히 담쟁이덩굴이 햇살을 받아 생기 있게 흔들릴 때, 마치 작은 숲처럼 느껴집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며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그늘 아래에선 한참을 머물고 싶어질 만큼 시원한 기운이 감돕니다. 무더운 도시 속에서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귀한 쉼표 같은 계절입니다.

가을이 오면 그야말로 색의 향연입니다. 주황빛과 붉은빛으로 물든 단풍들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며,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 풍경을 그대로 꺼내놓은 듯합니다. 낙엽 밟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됩니다. 이 언덕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우리 안에 스며듭니다.

겨울에는 언덕 전체가 포근한 정적에 감싸입니다. 눈이 내리면 담장 위로 소복이 쌓이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희끗한 하늘빛은 차분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든 겨울날은 더없이 조용하고 고요합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는 다른 계절에선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감각입니다.

요즘처럼 디지털과 화면 속 자극에 익숙해진 시대에 살다 보면, 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언덕을 걷는 동안만큼은 그 화면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됩니다. 가파르지 않은 이 언덕길은 속도를 늦추는 데 아무런 거부감도 들지 않게 해 줍니다. 오히려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담벼락에 피어난 담쟁이덩굴, 오래된 붉은 벽돌집, 골목을 따라 그려진 벽화 하나, 낡은 계단 옆에 핀 들꽃 한 송이. 이 모든 것이 평소에는 지나쳤을 ‘풍경의 조각’들이지만, 하나하나가 멈춰 서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무심코 올린 손끝이 담벼락의 온기를 느끼고, 거기서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 언덕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도 조금 정돈된 기분이 듭니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천천히 가라앉고, 조용히 스며드는 감정이 고요한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조용히 느끼는 시간을 선물하는 공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혹시 요즘 마음이 복잡하다면, 혹은 바쁜 일상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고 싶다면, ‘대구 청라언덕’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곳은 큰 액션이나 이벤트가 있는 여행지는 아니지만, 조용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혼자라서 좋은 곳, 천천히 걸어야 더 보이는 풍경, 말없이 위로하는 담쟁이 담벼락이 당신이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아주 조용하게 곁에 머물러 줍니다. 여행은 때로 목적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울림이 더 중요하다고 하죠. 이 언덕길은 그런 여운을 오래 남기기에 충분합니다.

정보 및 찾아가는 길

장소	대구 청라언덕 (달구벌대로 2029
주요 볼거리	계산성당, 선교사 주택, 90계단, 담쟁이 담벼락, 독립운동 조형물
계절별 매력	봄 - 목련, 여름 - 녹음, 가을 - 단풍, 겨울 - 설경
추천 대상	혼자 걷고 싶은 사람,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고 싶은 사람

 

청라언덕

(출처) 구글 지도

 

‘대구 청라언덕’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나를 다시 꺼내어 보는 시간입니다. 다음 계절엔, 당신도 이 길을 한 번 걸어보시길 바랍니다.